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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철학에서 마음 작용의 이해

1. 들어가며

요가 수뜨라 1장 2절에 보면 ‘Yogas citta vrtti nirodhah’ 『요가는 마음작용을 제어하는 것이다』는 말이 나온다 . 빠딴잘리가 제일 첫 장부터 요가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을 한번에 나타낸 것은 그만큼 요가는 마음작용에 대한 정확한 고찰로부터 최종목표인 해탈의 경지에 이를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그 뒤부터는 모두 이러한 마음작용을 멈추게 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부연설명일 뿐이다.

그래서 요가수행자들에게 있어서 마음과 마음작용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이며 풀어야할 과제이다.

우리의 여러 가지 생각, 느낌과 감정 등 모든 것은 의식의 여러 가지 작용 기능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 마음작용에 의해서 웃고 울고 즐거워하며 행복해한다. 고요한 내면의 호수에 작은 미동이라도 있게 되면 호수는 동심원처럼 계속 퍼져나가면서 우리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요할 때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이러한 마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마음을 동요시키는 마음작용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고전요가철학을 통해 파악하여 요가를 수행함에 있어 올바른 방향를 찾고자 이 과제를 시작한다.

2. 마음이란 무엇인가?

상캬철학의 이론적 배경을 이어받은 요가철학에 따르면 물질적 몸이나 활동적 의지 자각적인 정신까지도 모두가 물질의 영역에 속하며 이러한 물질적 요소들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내적인 의식의 장이다. 마음이라는 물질원리와 순수한 의식원리인 뿌루샤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여 분별하지 못하는데서 무지가 생기고 이 무지에 기초한 행동에서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필요하다.

고전요가 철학의 이론적 배경은 심리학이며 이는 요가의 중심사상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명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현실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경험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초월하고자 하는 것이 마음이며 이 마음이라는 말은 초기 불교의 경전에서부터 자주 사용되었으며 <요가수뜨라>, <요가바샤>에서도 빈번하게 사용되는 술어 가운데 하나이다.

‘마음’은 상캬의 심리기관과 구별되는 술어로서 심리기관(지성, 아만, 의근)이 근본원질의 전변에 의해서 발생한 형이상학적이고 객체적인 심리기관이라면 ‘마음’은 현상계에서 자각되는 의식현상의 주체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존재론적 심리기관이다.

따라서 요가에서 말하는 ‘마음(citta)’은 의식, 잠재의식, 무의식을 포함하는 마음의 모든 활동을 말한다. 즉 마음은 현상으로 나타나는 의식상태만을 의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경험이 기억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창고와 같으며 경험이 저장되었다가 기회가 오면 활동하는 잠재력이 남아있는 기관이다.

마음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외부환경과 접촉하면서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데 마음에는 현실에서 잠재됐던 것이 나타나는 ‘작용(vrtti)의 상태’와 그 작용의 원인으로 ‘잠재된 상태’가 있어서 잠재된 상태인 원인으로서의 마음과 잠재된 상태에서 작용으로 나타난 결과로서의 마음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은 원인이면서 결과이며 형이상학적 사유대상이라기 보다는 고뇌를 주체적으로 자각하는 인간의 실존적 기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은 근본원질에서 전변된 심리기관인 지성, 자아의식, 의근을 모두 포함한다

지성은 심리적 원리를 강조할 때는 ‘지성’이라 하고 현상의 모든 존재가 여기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되돌아가는 것’이라 하고 현상계의 모든 존재의 제 1원인이기 때문에 ‘대’ 또는 ‘대원리’라 하고 주관적 원리를 강조할 때는 ‘대아’라고 하고 지성의 기능과 속성을 강조할 때는 ‘순수속성’이라 한다.

자아의식은 다양한 세계에서 개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관이다. 자아의식은 ‘참나’에 전달하는 ‘지성’과 외부 대상을 심리기관으로 전달하는 의근 사이에 있으면서 ‘참나’가 개체를 경험하기 위한 아집적인 의식을 갖는 기관이다. 의근은 마음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술어이다.

마음에는 경험이 잠재적인 형태로 저장되지만 단순한 심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평가받은 선악의 행위까지도 업보로써 발생할 씨앗의 형태로 저장된다. 그래서 마음은 번뇌가 계속되고 업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윤회하는 원인이 된다. 마음은 인간생명의 근원으로서 개체로 존재하기 위한 생명보존력과 같은 힘이 저장된 곳이다. 즉 마음에는 인간이 한 개체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마음작용에 대한 이해

사람의 마음 속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마음의 한 측면에서는 언제나 무한한 의식인 그 본성을 자각하고 있다. 즉 마음의 한부분도 뭔가를 욕망하고 또 하나의 부분에서는 분별의 기능을 하고 또다른 부분에는 의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바란다’라고 하는 에고인 것이다.

외부 대상이 세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마음도 세가지 근본 속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의식, 활동, 정체의 성향을 갖는다. 이것을 싼스끄리뜨어로 말하면 사뜨바, 라자스, 따마스적인 성향을 말한다. 마음은 의식을 본성으로 하는 순수속성의 기능이 가장 우세하다. 마음이 고요할 때는 자연스런 사뜨바의 성질을 취한다. 하지만 마음이 교란되어 불안할 때에는 라자스로 되고 따분하고 잠이 올때의 마음은 따마스적이다 . 마음은 본래 순수속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주지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따마스나 라자스의 어느 한쪽 상태로 보내지 말고 사뜨바의 상태를 유지하게 해야 한다.

마음작용에서 작용이라 함은 마음이 의식의 표면으로 나타난 것이다. 인중유과론에 따르면 無에서 有가 생겨날 수 없듯이 의식내의 잠재성에서 현재의식이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마음에서 다양한 의식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잠재적 원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잠재성이 ‘잠재력’과 ‘잠재인상’이며 이는 마음을 장소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작용으로 전변하기 위한 내재하는 원인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원리를 이해하면서 마음작용의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요가에서 마음작용은 바른 지식, 오류, 분별, 수면, 기억의 다섯 종류가 있다.

바른지식에는 감각기관을 통해 마음이 외부 사물이 영향을 받아서 생긴 마음 작용인 ‘직접 경험에 의한 지식’과 이미 알고 있는 하나 이상의 판단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판단을 이끌어내는 ‘추리에 의한 지식’ 그리고 믿을 만한 다른 사람을 통해 알게 되는 마음 작용인 ‘성전에 근거한 지식’이 있다.

오류는 실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 이는 올바름을 결여하기도 하고 잘못 전해지기도 한 실상을 나타내는 지성의 심리작용이다.

분별은 언어의 지식에 의한 것으로 대응하는 대상이 없는 것이다. 말과 실체와 개념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지 않은데 그 대상에 해당하는 말만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분별에 의한 마음작용이다. 오류는 사물의 진정한 모습이 확실한 경우 바로 잡을 수 있지만 분별은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실체가 되는 대상이 수반되지 않는 지식이다.

수면도 하나의 마음작용이나, 수면 중의 의식대상은 실재하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작용이다. 수면은 의식작용이 잠정적으로 멈춘 것이라고 하나 이것은 마음에 작용하는 세 가지 근본속성 가운데 따마스 구나의 정체 속성이 사뜨와의 순수속성과 라자스의 활동속성의 작용을 억제해서 일어나는 작용이기 때문에 다른 의식처럼 삼매에 의해서 억제되어야 할 마음 작용이다.

기억은 경험한 대상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외부의 어떤 자극에 의해서 알려진 대상이나 상상된 관념이 마음속에서 다시 출현하는 것이다. 모든 기억은 바른 지식, 오류, 분별, 수면, 기억을 경험한 것에서부터 나오며 수행이 깊어지면 다른 표층 심리작용은 사라지지만 잠재되었던 기억은 의식의 표면으로 재생되어서 강력한 작용을 일으킨다. 기억은 번뇌의 원인이므로 억제되어야 할 중요한 마음 작용이다.

요가수뜨라에서는 5가지 마음작용을 물든 것과 물들지 않은 것으로 나눈다. 바른 지식은 ‘물든 것’이며 바른 지식외의 것은 ‘물들지 않은 것’이다. 브야사의 주석에 따르면 ‘번뇌에 물든 것은 번뇌의 원인이 되고 잠재업이 쌓이는 밭이 되며 번뇌에 물들지 않은 것은 식별지를 대상으로 하고 근본속성의 임무를 방해하는 것이다’ 고 했다. 그래서 이 마음의 작용들이 주로 번뇌의 원인이 된다.

다섯 가지 마음작용들 가운데 오류나 분별은 무지의 원인이 되어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 수면은 바른 지식의 기능을 억제하고 기억은 경험했던 것을 잠재적인 상태로 남겨놓기 때문에 번뇌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다.

요가에서의 번뇌는 내적이고 주관적이고 심리적이고 영속적인 마음작용이다. 번뇌에는 무명, 자기의식, 탐욕, 증오, 생명애착의 다섯 가지가 있는데 무명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된다. 요가수뜨라에서 ‘자기의식은 보는 주체인 참나의 능력과 보는 도구인 마음의 능력을 동일체라고 생각하는 마음작용이다’ 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참나와 마음의 기능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라는 뜻이며 이러한 무지에 근거를 둔 개체의 의식이 자기의식이다.

번뇌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괴로움으로 작용하는 것은 탐욕과 증오를 통해서이다. 탐욕은 즐거움을 경험했던 사람이 즐거움에 대한 애착이 일어나서 그것을 다시 갖고자 하는 마음작용이다. 증오는 괴로움을 경험했던 사람이 괴로움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이 다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마음작용이다.(YB 2.7-8) 탐욕과 증오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번뇌이며 주로 현생에서 일어난다.

생명애착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망으로 이것도 무명에 근원을 두고 자기의식을 의지처로 하는 번뇌이다. 그러나 무지와 같은 인식, 괴로움과 같은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한 개체가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는 모든 생물이 갖는 자기 보존 본능이라고 한다.

요가에서 정의하는 마음의 범주에는 의식표면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내부에 잠재해 있다고 유추할 수 있는 잠재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므로 이 또한 형이상학적인 마음작용이라 할 수 있다. 마음작용의 원인으로서 의식내부에 저장되어 있다가 기회가 오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잠재의식이다. 잠재의식은 과거의 생명과 현재 및 미래의 생명을 잇는 근원적인 힘이고 이러한 잠재적인 힘의 개념으로 나타나는 용어가 잠재력, 잠재인상, 잠재업이다. 이들은 모든 번뇌의 원인적인 힘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발현하며 현재의 마음작용이나 번뇌는 이러한 잠재적인 힘을 남기는데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요가 철학에는 잠재력이 수행론과 업론, 윤회론이라는 양면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수행론의 측면에서 잠재력은 마음의 작용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두 방면으로 기능을 발휘함으로 바로 이 잠재력에 의해서 마음의 작용을 억제하여 삼매에 도달한다.

잠재업은 현생이나 다음 생에서 출생과 수명 그리고 경험등의 과보로 나타난다.

그리고 잠재인상은 경험에 의해서 마음에 남은 흔적이다.

이러한 잠재의식들 사이의 관계를 보면 요가수뜨라에서 ‘번뇌를 근원으로 하는 잠재업은 현생이나 내생에서 경험하게 된다’라고 하며 ‘번뇌의 근원이 존재하는 한 잠재업은 그 업보로 출생과 수명과 행.불행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잠재력은 경험에 의해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잠재의식의 상태이며 잠재인상은 윤회과정에서 생긴 무수한 생애의 여러 가지 성향에 관계되며 이들 대부분은 의식내부에 잠자고 있는 상태며 현생에서 생긴 것이 아니므로 잠재업의 원인은 번뇌이고 잠재력과 잠재인상의 원인은 잠재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4. 마치며

요가의 목표는 마음작용을 제어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인생의 삶에서 경험하는 고뇌의 체험을 통해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며 참된 자아(뿌루샤)와 그릇된 자아(쁘라끄리띠)를 구별하지 못하고 쁘라끄리띠를 뿌루샤로 잘못 알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윤회가 일어난다. 뿌루샤가 쁘라끄리띠와 다른 것임을 아는 식별의 지혜를 획득하면 우리의 순수의식이 드러나고 우리의 영혼이 진정 해탈에 이르게 된다.

초월적인 절대자를 추구하는 우빠니샤드의 철학자들은 그들의 관심을 외부세계에서 인간의 내면세계로 돌리면서 마음이라고 하는 인간의식의 장에 놀라운 통찰을 이루어냈으며 미세한 인간의 의식의 가장 중심부에 참자아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이러한 우빠니샤드에 기초하여 요가철학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무형의 신체에 큰 비중을 두었으며 이는 해탈과 독존이 마음을 제어하는 삼매에 있기 때문이다.

삼매는 마음의 집중과 조절로 가능한 것이고 삼매 또한 마음의 한 상태이고 苦에서 벗어나 독존으로 가는 데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고요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 어떠한 작용도 없는 상태, 어떠한 동요도 없는 상태에서 삼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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